설교 조각 분해 — 지난 10년의 설교가 다시 재료가 되는 법
완성된 설교문은 다시 쓰이지 못하는 닫힌 문서입니다. 설교 한 편을 의미 단위 조각으로 분해하고 성경 구절로 연결해, 지난 10년의 예화와 통찰을 재료로 되살리는 방법을 다룹니다.
조성현 · 사역자 · AI 윤리 · 옵시디언 PKM 강사
목사님의 하드디스크 어딘가에는 지난 10년의 설교가 잠들어 있습니다. 한글 파일로, 워드 파일로, 연도별 폴더에 차곡차곡. 그 안에는 다시 쓰일 자격이 충분한 예화가 있고, 그때만 반짝였던 통찰이 있고, 몇 주를 붙들고 씨름한 주석 정리가 있습니다.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? 그 보물들이 한 번도 다시 사용되지 않습니다.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"비슷한 이야기를 예전에 했던 것 같은데"까지는 기억이 나는데, 어느 해 어느 파일이었는지는 끝내 못 찾고, 결국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. 이 글은 그 잠든 설교들을 다시 살아 있는 재료로 바꾸는 방법 — 제가 설교 조각 분해라고 부르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설교 준비에 AI를 쓰는 법에서 저는 설교 준비의 격차가 프롬프트가 아니라 "내 기록의 축적"에서 벌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. 이번 글은 그 축적을 실제로 만드는 공정입니다.
완성된 설교문은 닫힌 문서입니다
먼저 왜 그 보물들이 다시 쓰이지 못하는지부터 보겠습니다. 원인은 설교문이라는 문서의 성격 자체에 있습니다.
완성된 설교문은 하나의 완결된 흐름입니다. 서론에서 본문으로, 예화에서 적용으로, 30분의 설교가 한 덩어리로 짜여 있습니다. 강단에서는 이 완결성이 힘이지만, 자료로서는 정확히 이 완결성이 감옥이 됩니다. A4 열 장짜리 파일 안에 예화 세 개, 주석 정리 두 단락, 인용 구절 열두 개가 들어 있어도, 컴퓨터가 보기에 그 파일은 그냥 "파일 하나"입니다. 세 번째 페이지의 그 예화만 따로 검색되지도, 다른 설교와 연결되지도 않습니다. 저는 이것을 닫힌 문서라고 부릅니다. 설교문이 쌓일수록 폴더는 무거워지는데, 꺼내 쓸 수 있는 것은 늘지 않는 상태 — 많은 목사님의 설교 아카이브가 정확히 이 상태입니다.
책장에 책이 100권 있어도 어느 책 몇 장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 그 책장은 장식입니다. 반대로 책은 그대로 두고 챕터 목록만 손에 쥐어도 책장 전체가 쓸 수 있는 자원이 됩니다. 설교 조각 분해는 설교문이라는 책에서 챕터 목록을 뽑아내고, 각 챕터를 낱장의 카드로 만드는 일입니다.
분해의 원리 — 무엇을 쪼개고, 무엇을 잇고, 무엇을 남기는가
방법은 개념적으로 단순합니다. 설교 한 편을 의미 단위의 메모 조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. 다만 아무렇게나 자르는 것이 아니라,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.
첫째, 의미 단위로 쪼갭니다. 설교문을 읽고 "이 설교는 몇 개의 생각 덩어리로 되어 있는가"를 판단해, 덩어리마다 제목이 붙은 독립 메모로 만듭니다. 어떤 설교는 다섯 조각이 나오고 어떤 설교는 여덟 조각이 나옵니다. 이때 예화나 예시가 들어간 조각에는 앞에 핀(📌) 표시를 붙입니다. 사소해 보이지만 이 표시 하나로, 나중에 📌만 검색하면 지금까지 강단에서 사용한 모든 예화의 일람이 나옵니다.
둘째, 성경 구절을 잇습니다. 각 조각에 인용된 성경 구절을 위키링크로 겁니다. 예를 들어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27절이 인용됐다면 [[엡5_26]], [[엡5_27]]처럼 절 단위로 쪼개어 링크합니다. 제 볼트에는 성경이 절 단위 노트로 들어 있어서, 이 링크가 걸리는 순간 그 구절 노트에는 "이 구절로 설교한 모든 기록"이 자동으로 모입니다. 훗날 같은 본문 앞에 다시 섰을 때, 그 구절 하나를 열면 과거의 나와 만나게 되는 구조입니다. 게다가 절 노트에는 평행 본문과 관련 구절이 미리 연결되어 있어서, 조각에서 두 번의 클릭이면 공관복음의 평행 기사나 관련 구절까지 건너갈 수 있습니다.
셋째, 원본은 그대로 보존합니다. 조각을 냈다고 설교문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. 분해된 메모들이 위에 얹히고, 원본 설교문은 같은 노트 하단에 온전히 남습니다. 조각은 재료로 흩어지되 설교의 전문과 흐름은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. 실제로 위쪽의 조각 목록만 훑어도 그때 설교의 결이 되살아나는 효과가 있습니다.
이 분해를 AI가 대신합니다
여기까지 읽으신 목사님의 마음속에 아마 이 문장이 떠올랐을 것입니다. "좋은 건 알겠는데, 설교 300편을 언제 저렇게 자르고 있나." 맞습니다. 손으로 하면 불가능한 작업입니다. 설교 한 편을 읽고, 의미 단위를 가르고, 예화를 표시하고, 구절마다 링크를 거는 데 사람 손으로는 한 편에 한 시간도 모자랍니다. 저도 이것을 손으로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. 처음부터 AI에게 시키려고 설계한 공정입니다.
지금 제 워크플로우에서는 설교 원문을 열고 명령 하나를 실행하면, AI가 설교를 분석해 적정한 조각 수를 스스로 정하고, 위의 세 원칙대로 — 의미 단위 분해, 예화 핀, 절 단위 구절 링크, 원본 보존까지 — 한 번에 처리합니다. 사람은 결과를 검토하고 잘못 읽은 부분만 고칩니다. 한 편 처리에 걸리는 시간이 몇 분으로 떨어지니 계산이 달라집니다. 하루에 열 편씩만 돌려도 5일이면 1년 치 설교가 전부 조각으로 분해됩니다. 10년 치도 방학 하나면 됩니다.
이 워크플로우는 계속 진화했습니다. 처음에는 설교를 한 편씩 열어 실행하는 방식이었는데, 지금은 sermon-import라는 하나의 자동화 스킬로 묶여서 — 설교 파일이 모인 폴더 경로만 알려 주면 워드 문서를 마크다운으로 변환하고, WORD 분류와 신학 주제를 붙이고, 조각으로 분해해 전용 폴더에 정리하는 것까지 AI 에이전트가 백 편 단위로 일괄 처리합니다. 한 편씩 다루던 수공업이 공정 하나로 패키지화된 것입니다. 실행도 대화식입니다. 에이전트가 "볼트가 어디에 있습니까", "설교 폴더는 어디입니까", "먼저 시험해 볼 샘플은 무엇입니까"를 차례로 물어 오고, 답만 하면 나머지가 진행됩니다. 물론 처음에는 각자의 컴퓨터 환경 때문에 오류도 납니다. 저는 수강생들에게 그 실패도 귀한 경험이라고 말씀드립니다. 한두 번 부딪히며 자기 환경에 맞게 다듬고 나면, 그다음부터 매주의 설교 정리는 명령 한 줄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.
한 가지는 솔직하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. 이 분해의 품질은 결국 AI에게 주는 지시문의 품질인데, 그 지시문은 제가 1년 넘게 실제 설교로 시험하고 깎아 온 것이라 이 글에 옮겨 적지는 않습니다. 다만 원리는 위에 다 공개했습니다 — 의미 단위, 예화 핀, 절 단위 링크, 원본 보존. 이 네 가지를 지키는 지시문이라면 목사님이 직접 만드셔도 방향은 같습니다. 완성된 체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만들고 싶으신 분을 위해서는 강의에서 전체 과정을 화면과 함께 다룹니다.
조각이 모이면 벌어지는 일
분해된 조각들은 볼트 안의 전용 폴더에 쌓입니다. 설교 100편이면 조각 수백 개 — 목사님 한 사람의 설교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. 이 시점부터 성격이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.
우선 그래프가 달라집니다. 어제까지 파일 100개였던 아카이브가, 예화·통찰·구절 링크로 서로 연결된 수백 개의 점이 됩니다. 부활에 관한 조각들이 한 군집으로 모이고, 그 군집이 고린도전서 15장의 절 노트들과 이어지고, 그 절 노트가 3년 전 부활절 설교와 이어집니다. 백링크로 자료가 누적되며 연결되는 이 구조를 저는 지식의 복리라고 부릅니다. 설교를 한 편 더할 때마다 기존의 모든 조각이 조금씩 더 가치 있어지기 때문입니다.
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새 설교를 쓸 때 되돌아옵니다. 제가 만든 "설교 데스크"라는 도구는 설교 원고를 타이핑하는 동안 옆 패널에서 관련된 과거 조각을 실시간으로 추천합니다. "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통하여"라고 쓰는 순간 성육신에 관한 과거의 메모들이 옆에 뜨고, 필요한 것은 끌어다 연결하면 됩니다. 추천된 메모의 "노트 열기"를 누르면 그 시절의 설교가 화면 옆에 나란히 열려서, 같은 본문으로 몇 해 전에 무엇을 강조했는지 지금 쓰는 원고와 비교하며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. 무엇보다 외부 AI가 지어내는 자료가 아니라 전부 내가 실제로 강단에서 했던 말과 내 손으로 정리한 메모이기 때문에, 사실 확인 걱정 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.
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, AI 에이전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. "고린도전서 15장과 부활에 관해 내가 했던 모든 설교와 메모를 종합해 줘." 그러면 과거의 설교 조각·묵상·스크랩이 종합된 초안 구조가 만들어지는데, 그 재료의 절반 이상이 내 자료입니다. 어디서 본 듯한 AI 초안이 아니라, 내가 걸어온 길 위에 세워지는 초안입니다.
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. 이 모든 것의 목적은 "설교를 편하게 하자"가 아닙니다. 찾지 못해서 죽어 있던 10년의 자료를 되살리고, 자료를 뒤지느라 새던 시간을 말씀과 기도와 양육 앞으로 돌려놓자는 것입니다. 씨름은 여전히, 아니 오히려 더 깊이 목회자의 몫으로 남습니다.
시리즈를 마치며
"설교 준비와 AI" 시리즈의 그림이 이제 이어집니다. 1편에서 AI를 놓을 자리와 책임의 경계를 정했고, 2편에서 단계별 프롬프트를 다뤘고, 이번 3편에서 그 모든 것의 토대인 "내 기록"을 재료로 바꾸는 공정을 다뤘습니다. 결국 순서는 이렇습니다. 기록이 조각이 되고, 조각이 연결되고, 그 연결 위에서 AI가 비로소 내 목회의 역사를 아는 조력자가 됩니다.
지난 설교들을 이렇게 되살리는 전체 과정 — 옵시디언 세팅부터 분류 체계, 설교 분해 자동화, AI 에이전트 활용까지 — 은 강의에서 단계별로 함께 만들어 갑니다. 전체 로드맵은 목회자를 위한 옵시디언과 AI 에이전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고, 교회나 노회 단위 교육은 단체 세미나로 진행합니다.
지난 10년의 설교는 지나간 원고가 아닙니다. 아직 분해되지 않은 재료일 뿐입니다.